자주하는 질문
“지금 세계무대의 중심이 동북아로 이동하는 가운데, 동북아의 역사질서가 대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동북아, 그 중에서도 특히 한중일 3국은 지금 역사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수천 년 동안 지속돼온 역사 주도권 싸움입니다. 나라 이름부터 보십시오. 중국은 자기들이 세계의 중심국[中國]으로 역사의 주도국이라 합니다. 일본은 광명의 뿌리[日本] 국가라고 주장하며, 자기네 역사를 한반도에서 파생된 것이 아닌 자생의 역사로 했습니다.
중국은 2002년 공식적으로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한민족의 고대사를 그들의역사 속에 편입시켜 자국을 동북아의 최고最古 국가이자 중심 국가로 만들겠다는 야욕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중국의 동북방 변방지역에서 황하 문명보다 더 오랜 역사를가진 문명인 소위 홍산문화가 20세기초부터 발굴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주장해 온 중국 역사의 시원보다 훨씬 이전의 유적과 유물들이 나타난 것이지요. 난처해진 중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민족 역사관’이라는 교묘한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이때 가장 문제가된 중국사의 시원을 더 오랜 옛날로 끌어올리기 위해 중국은 소위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을 시작했습니다. 중국 고대사에 공백으로 남아있던 3대 왕조 하·상·주의 연대를 확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신화의 시대로 알려진 삼황오제三皇五帝 시절을실재實在한 왕조로 만드는 ‘중화고대문명탐원공정中華古代文明探源工程’을 2003년부터 진행했습니다.
이 공정은 하상주단대공정보다 한 술 더 떠서, 중국 역사를 1만 년 전으로 끌어 올려 중화 문명을‘세계 최고最古 문명’으로 변조하려는 계책입니다.
이 탐원공정의 일환으로 동방 문명의 주인공인한민족의 북방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치밀한 정치 공작을 벌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동북공정東北工程입니다. 동북공정은 중국이 과거2천여 년 동안 자행해 온 동북아 역사왜곡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북공정의 핵심은 만주와 요동의 역사는물론 한반도의 한강 이북까지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는 데 있습니다.
동북공정에 깔린 중국의 저의가 무엇이겠습니까. 남북한의 통일에 대비해 동북 3성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할 근거를미리 만들어두겠다는 것입니다. 한국이통일되더라도 한국의 역사 무대를 한반도 안으로 한정시키고, 대신 중국이 동북아 전체의 맹주가 되고, 더 나아가 미국을 앞지르는 초강대국으로 비상해서 세계사의 종주가 되겠다는 의도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21세기의 세계를 중국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야망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일본은 일본대로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독도와 중국 근해 센카쿠 열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주변국과 영토분쟁을 계속 야기하고 있습니다.급기야 아베정권이 등장해 군국주의 대표 구호인‘천황폐하만세’를 외치며 과거의 침략행위를 전면부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의 독도 도발도 중국의 동북공정과 마찬가지로 동북아에서의 주도권 분쟁이며 역사전쟁입니다. 식민지 시대에 일본은 조선의 뿌리 역사를 제거하기 위해 『삼국유사』 「고조선기」의 석유환국昔有桓國’이란 대목을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왜곡하였습니다. 석유환국이란 우리 한민족이 옛적에 세운 나라, 곧 환국桓國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위대한건국建國 이야기인 동시에 인류 창세사를 드러내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그런데 환국의 나라 국國 자를인因자로 조작해서 ‘옛적에 환인이 있었다’는 한낱인물사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글자 하나를 바꾸어 한민족 7천년 상고사의 혼을 동시에 뿌리째 뽑아버렸습니다.
이렇게 동북아 역사는 주객이 전도된 배은망덕의 역사입니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으로 한민족의 시원 역사가 완전히 말살되었습니다. 저 아시아 대륙을 무대로 활짝 열렸던 환국과 배달은 대한민국의 뿌리이자 중국과 일본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중국과 일본의 한국 고대사 왜곡과 말살은 결국 제자신의 뿌리를 부정하고 잡아먹는 ‘패악질’이고, 이는 실로 용서받지 못할 배은망덕입니다.”
“안타깝게도 『환단고기』로 묶여진 다섯 책 이외의 정통 사서들은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여러 요인들을 열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외적 요인으로는 전란戰亂과 탈취를 들 수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무수한 전란戰亂 속에 사서들이 화재로 소멸되었거나 외적에게 탈취됐습니다. 역사학자 송호수는 사료 멸실의 대표적 사례로 열가지를 꼽는데 이 가운데 전란이 무려 일곱 차례에달합니다.(도표 참조)
반면 내적 요인으로는 우리 스스로의 잘못도 큽니다. 다름 아닌 우리 선조들, 특히 집권층에서 앞장서 우리 정통 사서들을 없애버리는 과오를 저지르기도 했으니까요.”
“사서 소실에는 우리 자신의 잘못도 있다”는 이대목에서 안 종도사는 특히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아니면 서양이든 외세의침탈에 의해 우리 역사책들을 잃어버린 것은 비판하고 욕할 수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그 귀중한 사서들을 없애려고 ‘기를 썼다’고 할 정도였으니 참으로 분개를 넘어 절망스럽고 허탈할 따름”이라는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왜 그랬을까? 어떻게 우리사서들을 자기 손으로 없앴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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