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정신문화

상투와 칠성문화

대한K화랑 0 355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신체발부 수지부모, 즉 신체의 모든 것은 부모한테 물려받은 것이므로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부모한테 물려받은 머리털을 보존하기 위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상투를 틀었다. 

 

 

상투를 틀고 씨름하는 장면(고구려 각저총 벽화)

 

상투는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나온 구절만으로도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상투튼 모습을 볼수 있고, 신라의 토용가운데 인물상에서도 상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몽골이 지배한 때를 빼고는 상투를 틀었다.

 

몽골이 지배할 때 관료들은 변발을 해야 했지만, 공민왕이 배원정책을 실시하면서 변발을 폐지하고 다시 상투를 틀었다. 이 상투가 오늘날처럼 짧은 머리가 된 것은 고종 33년(1895) 을미개혁으로 단발령을 실시하면서 부터이다. 

 

상투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혼한 남성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일단 상투를 틀면 어른으로 대접받았고, 나이를 더 먹어도 상투를 틀지 못한 사람에게는 반말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신랑에게 봉변당하지 않으려고 나이 많은 노총각은 결혼과 관계없이 상투를 틀고 다녔는데, 이를 건상투라고 했다. 이처럼 상투는 결혼한 남성의 상징구실을 하여 단발령이 실시되자 유생들은 거세게 저항하는 의병운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조선시대 상투를 틀 때에 앞으로 4번 뒤로 3번 꼬아 북두北斗를 받아내렸기 때문에 상두上斗(상투)라고 불렸습니다. 

 

상투라는 말의 어원이 상두(上斗)에서 비롯되었고, 뽀족한 수란 말의 어원도 상투머리의 뽀족한 부분 상두 곳,북두칠성의 덕을 의미합니다. 북두칠성은 인간의 생사화복과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를 기도와 정성을 통해 소원성취할 수 있는 뽀족한 수가 있습니다. 옛 어머니들이 정안수를 떠놓고 칠성님이나 삼신할머니께 빌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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