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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한K화랑 0 105

Flag of Iran.svg 

 

1 개황 

 

   수 도   :   테헤란(Tehran, 인구 850만 명)  

   인 구   :   약 8,200만 명

   면 적   :   165만km²(한반도의 7.5배)

   민족구성   :   페르시아족(51%), 아제르바이잔족(24%), 길락-마란다란족(8%), 쿠르드족(7%), 아랍족(3%),루르족(2%), 발루치족(2%), 투르크족(2%), 기타(1%) 등

   종 교 : 이슬람(시아파)

   시 차 : 우리시간 -5시간 30분(3.21~9.21 서머타임시  4시간 30분)  

   1인당 GDP(’18년) : 5,417미달러

   우리나라와의 교역(’18년) : 수출 23억 미달러, 수입 40억 미달러

 

Iran on the globe (Afro-Eurasia centered).svg 

2 문화적 특성 및 고려사항

 

이란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3대륙 간 통로의 중심이다. 인더스강과 티그리 스강 사이의 이란 고원에 위치하며(북위 25°~40°, 동경 44°~63°) 동서 문명 (Silk Road)의 가교 역할을 했다. 지금도 7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아시아  유럽  중동 대륙을 연결하는 허브이자, 중앙아  서남아 등지로 진출할 수 있는 전 략적 입지조건을 지녔다. 이로 인해 북방 유목민족 문화와 인더스-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흡수, 독특한 복합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란인은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높다. 페르도시  사디  하페즈  루미 등 세계문학사에 빛나는 시인을 민족의 영웅으로 숭상한다. 일상 속에서 시를 즐기는 국민들이다. 앵커가 뉴스를 전하기 전에 시 한 수를 읊기도 한다. 2014년 10월 <퀴즈 온 코리아> 이란 대표 출전자는 사회자가 결선 진출을 자축 하는 장기자랑을 보여 달라고 하자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  을 읊었다. 다양한 인종의 복합민족국가이지만, 인구의 90% 이상이 시아파 이슬람을 믿 는다. 이 같은 종교적 연대로 국가의 단일성을 유지한다. 과거 셀주크 투르크나 몽고 등 이민족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고도 동화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덕 분이라고 한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생활 전반에서 이슬람화가 촉진됐다. 아직 이슬람 이전의 페르시아적 문화요소(조로아스터교)도 여전한데 노루즈(신 년)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란은 정교일치 체제다. 이슬람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이다. 이슬 람을 이해하지 않고는 이란을 이해할 수 없다. 휴일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목요 일 오후부터 금요일까지이다. 모든 생활을 이슬람 법률에 따른다. 법률을 제정  시행할 때도 이슬람 율법에 적합한지 여부를 확인받는다.

 

이슬람의 소수파인 시아파(Shiah : 추종자)는 다수 수니파(Sunni파 : 전통주 의자)와 대립하고 있다. 이는 예언자 모하마드(Mohammad) 사후 후계자 선정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아파는 다수에 의해 추대된 칼리프(Caliph)에 반발했다. 시아파는 모하마드와 혈통관계에 있는 알리(모하마드의 사촌이자 사 위)만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함으로써 탄생했다.

 

이란은 다양한 식생으로 먹거리가 풍성해 사시사철 제철과일을 싸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이슬람 율법에 따라 날 것이나 비늘 없는 해산물(뱀장어  조개 등) 은 먹지 않는다. 돼지고기  개고기는 금기 식품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신체가 많이 노출되는 스포츠는 이성의 관람을 금지 하기도 한다. 그러나 2019년 10월부터 38년만에 이란 여성도 축구장에 입장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승마  육상  레슬링  사격 등이 활발했다. 태권도는 이란에서 레슬링에 이은 제2의 국기(國伎)이다. 이런 이유로 이란은 ‘제2의 태권 도 종주국’을 자처하고 있다. 사산왕조 이후 ‘폴로 경기’가 성행했다. 풍부한 천연자원(석유 매장량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과 인구, 넓은 국토 및 전략적 입지조건, 인적자원의 질(인구의 2/3 이상이 고등교육 수 학) 등 성장 잠재력이 높다. 석유  가스 자원의 보고인 페르시아만  카스피해에 걸쳐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세계 석유수송량의 약 1/3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Hormuz) 해협과 페르시아만이라는 전략적 거점지역에 자리했다. 때문에 ‘석유 의 시대’ 이후 열강이 앞다퉈 차지하려는 경쟁을 펼쳤다.

 

(1) 세계유일의 이슬람 신정국가

 

1907년 러시아  영국은 이란을 양분했다. 이어 이란은 1911년 제1차 세계대 전 중 영국  러시아  오스만제국에 의해 점령당했다. 영국은 1919년 사실상 이란 을 보호령화했다.

 

1925년 레자 샤 팔레비(Reza Shah Pahlavi, ~1941)로 등극한 레자 칸 (Reza Khan)은 이란의 근대화에 주력했다. 1936년 차도르의 착용을 금지하고 서양복식을 장려했다. 1941년 팔레비 국왕 즉위 후 이란은 연합국의 병참기지 가 됐다. 종전 후 석유 국유화를 주장하는 국내 요구가 비등했다. 모사데그 (Mossadeq)가 총리에 임명됐다. 이에 미국은 1953년 영국과 함께 모사데크 정 부를 전복시켰다. 팔레비 왕조의 비민주성  빈부격차  서구화(이슬람 전통의 무 시) 등은 국민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1978년 벽두부터 반정부 시위와 유혈진 압의 악순환이 시작되어 팔레비는 결국 1979년 1월 미국으로 떠났다. 다음 달 프랑스 망명 중이던 호메이니가 귀국해 이로써 왕정이 종식됐다.

 

1979년 이슬람혁명은 이란 역사상 최초로 민중 봉기로 지배자를 교체한 사 례이다. 이란은 이슬람공화국을 국체로 채택했다. 이란 역사상 최초의 공화정이 탄생했다. 이란이슬람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은 이슬람 혁명이념 및 이슬람 원리에 입각한 이슬람 지상주의 사회 구현을 목표로 한다. 형식상 3권 (입법  행정  사법) 분립 원칙을 따르고 있으나, 최고지도자가 신정주의 원칙에 따라 이 3권에 우선한다. 이슬람 신정주의(theology)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이원적 통치체제를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대통령 선거에서 강경보수파 아흐마디네자드 후보가 저소득층의 압 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이후 이란 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가 진행됐다. 2012년 3월 제9대 총선에서 주요 개혁세력이 불참한 가운데 집권 보수 세력이 압승을 거뒀다. 2013년 6월 대선에서 중도파인 로하니 대통령이 당선, 2017년 5월 연 임에 성공했다.

 

(2) 문화교류시 고려해야 할 점

 

이란은 이슬람에 의한, 이슬람을 위한, 이슬람의 나라이다. 어떤 문화행사도 이곳 문화종교부의 사전허락을 받아야 한다. 한국음식축제와 같이 비정치적  비 종교적인 행사를 할 때도 이곳 외교부와 경찰 등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해당 부 처의 승인을 받은 행사를 다른 권력기관  정보기관에서 일방적으로 취소  해산시 키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이란)의 법과 풍습을 존중하고 따르려는 문화상대주의 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 ‘인샬라’(신의 뜻대로) ‘인저이란’(이곳은 이란입니다)이라는 말을 흔히 듣게 된다. 이란은 신뢰 등 사회적 자본의 형성이 매우 미약한 수준으로 핑계와 변명이 많다. 일의 속도는 매우 느리다. 이 모든 문화 차이에 대한 끈질긴 견딤 의 자세가 없이는 어떤 문화 교류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3 한류 현황

 

(1) 일반 현황

 

한국과 페르시아의 문화 교류는 멀리 1,200년 전으로 소급될 수 있다. 당시 실크로드를 통해 페르시아 문화가 통일신라에 유입됐다. 신라 향가  처용  의 주 인공이 페르시아 상인이라는 ‘학설’도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  에 나오는 이야 기들이 페르시아 설화라는 주장도 많다. 당시의 페르시아가 아니었다면 도대체 어떤 나라 어떤 민족이 그토록 많은 설화를 보유하고 집대성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우리나라와의 공식적인 외교관계는 1962년 수립되었고 우리나라는 1970년대 중동진출 과정에서 이란 내 건설시장에 적극 참여했다. 당시 2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밤낮없이 피땀을 흘려 양국관계의 기반을 닦았다. 두 나라는 이런 우 호 관계의 상징으로 1977년 서울과 테헤란에 각각 ‘테헤란로’와 ‘서울로’를 지 정했다.

 

수교 40주년인 2002년에는 테헤란에 한국광장(2002)과 서울공원(2003)이 만 들어졌다. 우리나라는 매우 드물게도 이란의 수도 테헤란 한복판에 도로  광장  공원의 명칭을 갖고 있다. 2012년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테헤란에서 여러 문화 행사가 펼쳐졌으며 2013년에는 이란의 첫 세종학당인 ‘테헤란세종학당’이 개설 됐다. 그해에는 또한 신라 공주와 페르시아 왕자의 1,400년 전 사랑이야기가 담 긴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  와 관련한 <쿠쉬나메 프로젝트>가 펼쳐졌다. 2014년에는 브라질 월드컵 계기 양국 대표팀의 동반 16강 진출을 염원하는 대대적인 종합문화체육행사가 열렸다. 2014년 10월에는 한국음식축제  한국음 식영화제  한국음식시집출판기념회 등 한국음식을 주제로 한 일련의 행사를 펼 치는 <대장금 프로젝트>가 개최됐다.

 

2006년~2007년, 주 1회 주말 저녁에 한국드라마 <대장금>이 이란 국영방송 국의 전파를 탔고 <주몽>이 2009년 방영되었다. 공식적인 수치는 아니지만 시 청률이 90%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란에서 한류가 시작된 기점이다. 실제 지금 도 많은 이란인들이 현지어 제목인 <양곰>에 대해 깊은 추억과 기억을 갖고 있 다. 양국 고위 관계자들이 공식 회의를 시작할 때도 인사를 주고받은 뒤에 <대 장금>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고서야 본론으로 들어가곤 한다. <대장금> 이후 한 국기업의 상품이 이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소프트웨어(문화  국격 등) 와 하드웨어(기술경쟁력  정보력 등)가 절묘하게 만나 대한민국의 스마트파워를 보여준 사례다.

 

하지만 이란 헌법 제44조에 따르면 미디어(TV  라디오)는 정부 영역에서 운 영할 수 있으며 민영방송이 금지되어 있다. 이란 국영방송(IRIB)을 통해 전파를 탄 한국드라마만 합법적인 한류이다. 물론 적지 않은 이란인들이 위성방송이나 인터넷 다운로드를 통해 한국의 대중문화를 즐기고 있다. 실제 한류와 관련해 정보와 자료를 교환하는 젊은이도 있다. 한국어를 배우고 위성TV를 통해 실시 간으로 한국의 드라마를 즐기는 마니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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