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역사문화

고인돌 문화의 중심은 한반도

코리언스코리아 0 37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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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분포된 고인돌, 그 고인돌 문화의 중심은 고대 한국


 거석문화는 희귀한 문화유산 중 하나다. 세계적으로 사례가 많지 않다. 이집트와 잉카의 피라미드, 영국의 스톤헨지, 이스터 섬의 모아이 유적 같은 거석문화가 있다. 거석巨石, 말 그대로 큰 돌로 만들어진 유적이다. 인간이 신성한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만든 건축물이나 전쟁의 승리 등을 기념하기 위한 조형물이다.  
 
거석문화 중 우리가 가진 거석문화는 고인돌이다. 피라미드나 모아이 유적 같은 거석문화와 달리 고인돌은 독특한 것이 몇 가지 있다. 고인돌은 놀랍게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 대륙과 동남아시아 그리고 일본에 분포하는 것은 물론 유럽에까지 널리 분포하고 있다. 이들이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점은 더욱 특별하다. 고인돌에 대한 설도 다양하고 어느 것을 확정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근거가 아직은 미흡하지만 확실한 것은 고인돌은 세계적으로 분포되어있지만 세계에 분포해 있는 것보다 많은 양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다.  

세계 전역에 퍼져 있는 것보다 많은 고인돌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 민족의 기원과 비밀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잃어버린 고대국가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우리 고대에 환국(桓國), 단국(檀國), 조선(朝鮮)이 있었다. 삼국유사에도 나오지만 우리는 역사책에서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삼국유사에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는 말이 명시돼 있다. 오래 전에 환국이 있었다는 기록이다. 환단고기에는 오환건국최고(吾桓建國最古)라고 명시돼 있다. 우리 환국의 건국이 가장 오래 되었다고 적고 있다. 한결 같이 중국보다 앞서 걱국되었고, 오래 되었다는 기록이다. 하지만 우리가 배워 본 적이 없는 나라요, 왕조다. 이 비밀이 고인돌에 숨겨져 있음을 확인하려 한다.  

우선 우리나라의 고인돌 분포지역을 확인해 보자. 한반도에 전국적으로 분포되어있지만 특히 세 군데 밀집되어 있다. 강화도, 전라도의 고창과 화순 일대이다. 남한에서 3만여 기, 북한에서 1만 5천 기 이상이 발견되었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고인돌은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덮은 선사시대의 무덤으로 거석문화의 일종이다. 고인돌은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지만 공동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혹은 제단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제단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지석묘(支石墓)라고 부르고 중국에서는 석붕(石棚)이라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돌멘(Dolmen)이나 거석(巨石-Megalith)으로 부른다.

고인돌은 ‘괸돌’이라는 뜻이다. 큰 돌을 다른 돌로 고였다는 뜻이다. 고인돌의 형식은 고인돌이 위치한 지역에 따라 형태와 부르는 이름에 차이가 있다.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이 있다. 탁자식은 고인돌을 판판한 굄돌을 세워서 지표위에 네모꼴의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모양이다. 한반도의 북부에 많아 북방식 고인돌이라고 한다. 바둑판식 고인돌은 땅 위에 있는 3~4개 또는 그 이상의 작은 받침돌이 덮개돌을 받치고 있다. 지하의 무덤방은 돌널, 돌덧널 등 다양하다. 개석식 고인돌은 지표에 커다란 덮개돌만 드러나 있고 괸돌이 없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 남방식 고인돌은 무지석식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도구가 발달하지 않았던 때 큰 돌을 채석하는 방법으로는 돌에 구멍을 파고 나무 쐐기를 박아 물을 부어 나무를 물에 불리면 나무가 팽창해 바위가 깨어지는 현상을 이용했다. 부피팽창에 의해 자연스럽게 바위가 떨어져 나간다. 전라도 고창에 가면 고인돌 유적지에 채석장이 남아있다. 돌을 떼어내던 흔적도 남아있다. 이렇게 해서 200톤이 넘는 바위를 떼어내고 도 옮겼다. 고인돌 유적지 화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 핑매바위가 있다.  

지석묘는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역사적 문화유산이다. 고인돌은 북방에서 전래되었다는 설과 남방에서 전래되었다는 설 그리고 한반도 자생설이 있다. 한반도 자생설은 재야 사학자들과 북한 측에서 주장한다. 한국의 고인돌이 어느 지역보다 밀집도가 높고, 고인돌의 축조연대도 어느 지역보다 앞선다는데 근거를 두고 있다. 가장 오래 된 고인돌이 한반도에 있고, 가장 크면서도 가장 많은 고인돌이 한반도에서 발견된다는 근거에서이다.

  

2.

 

한국의 고인돌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평가 조사원으로 방문했던 니시타니 타다시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해본다. 니시타니 타다시가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등록에 관한 평가 조사를 위탁 받고 현장 확인과 연구내용이다.  
 
지석묘의 기원지는 중국대륙 동북지방으로 추정되는데 한반도에 전파된 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현저하게 전개되었다. … 지석묘는 세계 각지에 존재하지만 한반도와 같이 독자적이면서도, 현저하게 발달한 지역은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반도의 지석묘는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역사적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고인돌 문화가 중국 동북부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한반도에 전파된 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크게 발전됐고, 이어서 일본 구주(九州) 서북부에까지 전파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고인돌의 핵심지역을 한반도로 잡았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세계문화유산으로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한반도 고인돌의 수가 전 세계 고인돌의 수량을 합한 것보다 더 많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일까. 분포도를 살펴보면 요동반도와 한반도 전역, 일본 규슈지역에 걸쳐 나타나 있다. 이 지역은 비파형동검의 영역과 일치한다. 비파동검의 시대도 청동기 시대이다. 비파형동검이 출토되는 지역은 고조선과 일치한다.

중국측의 기록을 보자. ‘동이전’ ‘후한서’의 기록이다. ‘동방왈이 이자 저야, 東方曰夷 夷者 柢也’ 동쪽방향에 사는 사람을 이(夷)라고 한다. 이(夷)는 근원이란 뜻이다. 왜 중국인은 이(夷)에 대한 의미로 근원, 핵심 뿌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적고 있을까. 중국에서 바라본 위대한 국가나 종족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 곳에 적고 있다. 하나만 더 보자. 

중국 최초의 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설문해자’에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동이종대 대인야, 東夷 從大 大人也’ 이 말을 해석하면 ‘동이인은 대의를 따르는 대인이다’라는 말이다. 중국인들이 기록한 것들에 한결같이 대단한 동이(東夷)의 정체가 무엇일까. 바로 그것이 우리의 잃어버린 고대국가다 삼국유사에도 나와 있는 나라다. 삼국유사에 적혀있는 석유환국(昔有桓國)이 바로 그 실체고, 환단고기에 나와 있는 오환건국최고(吾桓建國最古)라는 말에 다 들어있다. 우리의 환국의 건국이 가장 오래되었다는 기록이다. 중국 측의 기록과 우리 측의 기록이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오히려 인정하는데 한국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기찬 현실이 지금의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는 어떤 나라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정하게 된 사유는 무엇일까. 먼저 동이의 실체를 확인해보면 이렇다. 우리의 고대에는 환국, 단국, 조선이 있었다. 이들 삼성조가 바로 동이족의 실체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 번도 역사책에서 배워본 적이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배운 그 역사책은 바로 일본인이 만든 책이다.

마지막으로 적는다. 조선을 지배했던 일본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조선을 떠나면서 한 말이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인들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그래도 우리의 고대국가가 위대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고대사를 스스로 연구해 보시라.

  

3

 

고인돌의 나라, 한국. 고인돌의 역사는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외국 논문에선 고인돌의 최고 연대를 8000년 전까지 잡고 있다. 동양문명의 근원이 황하문명이며. 그 근원이 중국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상반된 유적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그 중심에 요하문명이라고 하는 홍산문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증거들도 하나 둘씩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훨씬 앞선 문명이 있다는 실증적인 유적들이다. 우선 1998년에서 2001년 충북 소로리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문화재 지표조사 및 시굴과정에서 1만 5000여년이 된 고대 볍씨 59점이 출토됐다. 소로리 볍씨가 발견되기 전 충남 서천 청동기 유적지에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된 3000년 전 쌀 창고가 처음 발견돼 탄화볍씨가 나왔다. 그 때에도 국내외 고고학자들을 놀라게 했지만 충북 소로리 탄화볍씨 연대가 1만 5천 년에 이르자 더욱 세계 고고학계를 놀라게 했다.  

2003년 소로리 볍씨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국제 고고학회는 인정했다. 소로리 볍씨 발견 이전에는 중국 후난(湖南)성 양쯔강 유역에서 발견된 볍씨였다. 소로리 볍씨가 중국의 볍씨보다 2000년이나 앞서는 놀라운 발견이다.  

한반도에 정착한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문명권이 중국보다 앞서 있었을 것을 예상하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다. 가장 궁금한 점은 ‘거석문화인 고인돌의 주인공은 누구인가’이다. 이는 한민족의 고대 국가가 있었다는 것을 부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고인돌은 인류가 농경문화를 시작한 이래 남긴 거석문화 유산으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확인된 고인돌 수는 약 5만 5000여 기에 이르며 그 중 대략 3만 기 정도가 한반도에서 발견됐다고 하는데, 한반도에서 발견된 수가 늘어나 대략 4만 5000에서 5만기 정도가 된다. 그렇다면 2만 5000기 정도가 다른 나라에서 발견된 것이고 전 세계에서 발견된 수의 두 배에 달하는 숫자가 한반도에서 발견됐다는 결론이다. 고인돌의 밀집도는 물론 분표면적, 수량에 있어 한반도는 고인돌의 본산이다.  

고인돌 분포 지역은 같은 동이족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문화가 있다

전 세계 고인돌의 절대 다수가 우리나라에서 발견됐다는 것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고고학자 사라 넬슨(Sarah M. Nelson)은 한반도에 10만 기가 넘는 고인돌이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한국이 바로 고인돌의 기원지라고 했다. 고인돌이 증거하고 있는 우뚝 선 역사적인 사실에는 한민족의 근원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많다. 한반도와 홍산문화의 근거지에서 한결 같이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고인돌이 발견되는 지역은 동이족이 살던 지역과 대체로 일치한다. 발견되는 유물도 마찬가지로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유적과 일치한다. 발견되는 유적이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유적과 유사하며 어떤 것은 똑 같은 것들도 다수 있다. 부정하려 해도 고인돌은 동이족과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우리의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을 숭상하고, 삼족오를 숭상하고, 여신을 믿는 종족이었음이 유사하다.

고인돌에서는 청동기시대 무덤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문양을 넣은 방울과 거울 등이 나온다. 이 도구들은 놀랍게도 오늘날 우리나라 무당들이 사용하고 있는 연장과 같다. 오늘날 무당들이 쓰는 명두(明斗)라고 하는 거울과 요령이라고 부르는 방울이 바로 그것이다. 청동기시대 제관(祭官)이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하던 물품들이 오늘날 샤머니즘의 무당 세계에 남아있다.

이러한 것들은 중국과는 다른 한민족의 전통고대국가가 있었고, 끝내 중국과 동화할 수 없었던 선사시대와 신화로 몰리고 있는 단군조선과 환웅·환인이 세운 국가가 독립적으로 존재했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가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다. 하지만 보다 실증적인 증거를 찾아내고 고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한민족의 역사는 우리가 확인한 것 이상의 오래 된 역사와 문화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잃어버린 고대왕국인 우리의 황국, 단국, 조선의 역사를 찾아가는 길은 험난하겠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글:  신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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