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정신문화

천제를 올린 성지, 소도

대한K화랑 0 428

천제는 어디에서 올렸을까요?


상고 시대 우리 조상들은 아무데서나 천제를 올린 것이 아니라 소도라는 특정 장소에서 올렸습니다. 초대 단군왕검이 천자로 추대되기 전 천제를 올린 장소는 단목 터[檀木之墟]는 고조선 최초의 소도라 볼 수 있습니다. 고조선의 11세 도해단군은 전국의 12명산 가운데 아름다운 곳을 뽑아 국선소도를 설치하였고, 13세 흘달단군도 곳곳에 소도를 많이 설치하였습니다. 24세 연나단군 때는 소도를 증설하였습니다 (단군세기).

특히 도해단군은 소도 둘레에 박달나무를 많이 심게 하였는데, 초대 단군이 박달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제를 올린 전통을 계승한 것입니다. 배달을 세운 환웅천황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 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왔는데, 그 신단수 역시 박달나무 단檀 자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도와 같은 종교적 성지는 이미 배달시대부터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도해단군은 소도에 심은 박달나무 가운데 가장 큰 나무를 환웅상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웅상이라 하였습니다. 초상화나 사진이 없던 그 시절에 나무를 환웅천황이 응감하여 계신 곳으로 여기고 모신 것입니다.

 

[산해경]에도 “숙신이라는 나라는 백민의 북쪽에 있는데, 그곳에는 웅상이라고 불리는 나무가 있다“라는 기록이 있고, 삼국지-위서동이전에도 소도의 나무가 언급됩니다. 소도 주위에는 금줄을 매어 사람의 출입을 금하였고, 소도를 훼손한 자는 금고형에 처하였습니다. 죄인이라도 소도 안에 들어온 자는 그 죄를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소도의 풍습 중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솟대(입목)입니다. 소도임을 알리기 위해 그 앞에 세운 높다란 기둥이 솟대인데, 이 솟대는 또한 신을 모시는 기둥이었습니다. 이러한 솟대를 박성수교수는 신단수를 대신한 기둥이라 하였습니다. 배달의 초대 환웅천황이 신성한 나무를 신단수로 삼아 그 앞에서 천제를 올린 것이 고조선 시대에 솟대로 변한 것입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하기 전까지 각 동네 어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서낭당 나무도 솟대와 같이 신단수를 대신한 것으로 그 마을의 수호목 구실을 하였습니다. 솟대는 조간鳥竿이라고도 하는데, 솟대 끝에는 이름 그대로 대개 새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앞서 홍산문화의 새 소조상과 새 모양의 옥기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겨레는 새를 신성시하여 토템으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새는 하느님(삼산상제님)의 사자로서 하늘의 뜻을 전하는 신령한 존재로 숭배되었습니다.

 

솟대는 그 신조가 앉는 신간神竿이었던 것입니다. 이때의 신조는 다름 아닌 신교 삼신문화의 상징물인 삼족오입니다. 주로 마을 어귀에 세우는 솟대는 우주나무와 하늘새의 조합입니다. 우주나무는 말 그대로 우주의 중심에 세워져 있는 나무입니다. 우주나무는 하늘 세계와 지상의 인간세계를 서로 연결하는 우주의 통로 구실을 합니다. 이 우주나무 끝에 앉아있는 하늘 새는 천신에게 인간의 기원을 전하는 전령자입니다. 때문에 솟대가 들어선 소도는 세계의 중심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이 교통하고, 사람이 하느님의 축복과 보호를 받는 신성한 공간인 것입니다.

 

솟대의 흔적은 멀리 동남아시아에서도 발견됩니다. 태국의 치앙라이 산간지역에 거주하는 아카족은 2천 년 전 티베트 부근에서 이주해 왔다고 하는데, 그 마을 입구에 새의 문이 세워져 있고, 문 꼭대기에 나무를 깎아 만든 새가 있습니다. 새는 악귀를 막아 마을을 지키고, 나쁜 귀신이 들어올 경우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전령자 역할을 하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져 왔습니다. 새의 문에 새로운 새를 매달 때는 마을사람이 모두 참여하는 행사를 엽니다. 

 

북방 솟대 문화는 남방 지역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중국 운남성 서남부와 태국 북부지역에는 북방 민족의 한 갈래인 라후족이 살고 있는데, 그 마을에서 솟대 문화의 흔적을 보다 선명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해마다 정월에 마을 사람이 모두 모여 새로운 기둥을 만들고 나무새를 깎아 얹어 제사를 준비합니다. 샤먼의 주도로 祭儀를 마치면, 솟대 형상의 조형물을 샤먼과 마을 사람이 제당으로 모시는데, 이때 흥겨운 춤과 노래로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하늘에 제사하고 신과 소통하는 제사장인 샤먼이 행사의 중심이 됩니다.

 

 일본 신사의 도리이

이 솟대는 일본으로 가서 신사 입구의 도리이라는 일주문이 되었습니다. 새가 앉아있다는 뜻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도리이는 솟대가 변형된 것입니다. 솟대를 포함한 고조선의 소도蘇塗문화는 일본에 전해져 도소塗蘇라 불리었습니다. 원래의 이름을 거꾸로 뒤집어 부른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새해의 평안과 건강을 기원하며 설날 아침에 마시는 술인 도소자께도 알고 보면 한국 소도문화의 영향입니다. 요컨대 신교의 소도문화는 동북아에서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가 아시아의 보편적인 문화가 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도 소도의 솟대와 유사한 유물을 볼 수 있습니다. BCE2000년경 파라오와 귀족 간의 세력 다툼으로 혼란에 빠졌던 이집트를 통일한 제12왕조의 첫 파라오는 신전과 성소를 재건하였습니다. 그 아들은 신전 앞에 약 20미터 높이의 거대한 화강암 기둥을 두 개 세웠습니다. 그 후 이집트의 또 다른 황금기인 제18왕조와 제19왕조 때는 더 많은 돌기둥을 두 개씩 쌍으로 신전 앞에 세웠습니다.

 

 

이집트 신전앞의 오벨리스크

 

그리스인들은 이 돌기둥을 뾰족한 절단기라는 뜻으로 오벨리스크라 하였고, 이집트인들은 신들의 빛이라 불렀습니다. 파라오들은 신으로부터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을 얻기 위해서 이 오벨리스크를 세웠다고 합니다.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구실을 한 오벨리스크는 신을 모시는 기둥인 고조선의 솟대와 그 기능이 상통합니다. 더구나 이집트의 제12왕조(BCE1991~1782)에서 제 19왕조(BCE1293~BCE1185)에 이르는 기간이 고조선 시대(BCE2333~BCE238)에 포함된다는 점에서도 두 문화의 유사성을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유럽에서도 동북아의 소도문화에 나타나는 나무 숭배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신화를 연구한 인류학자 프레이저는 유럽에서 오랫동안 나무 숭배가 광범위하게 행해졌다고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독일의 언어학자 그림은 신전을 뜻하는 튜턴어(북유럽 민족어)낱말들을 검토하여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성소는 자연림이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나무 숭배는 아리안어계에 속한 모든 유럽 사회에서 나타납니다. 그 대표적인 부족은 드루이드교를 신앙한 켈트족입니다. 그들은 겨우살이가 끝난 참나무를 특히 신성한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참나무 숲을 예배 장소로 택하고, 의식에는 반드시 참나무 잎을 사용하였으며, 키가 큰 참나무는 신의 형상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고대 게르만족은 흔히 성스러운 숲을 찾았고 오늘날 그 후손들 사이에서도 나무 숭배로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유럽의 나무 숭배는 동북아의 솟대 신앙과 마찬가지로 신과 소통하기 위한 성스러운 행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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