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생활문화

대한의 힘, 혈연

코리언스코리아 0 133

우리 사회에서 혈연은 지연, 학연과 함께 버려야 할 3대 연줄로 통한다. 혈연 중심의 의사 결정은 개인의 능력 발휘를 가로막고 공정한 룰의 적용을 방해하는 반민주적 행위로 간주되기 일쑤다. 또 ‘재벌’ ‘족벌’ ‘벌족’ ‘문벌’ 등 피붙이 중심의 집단을 일컫는 ‘벌’자 계열의 단어는 바람직한 이미지로 쓰이지 않는다.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공동체로 받아들여진다. 5e0605a.jpg  
 
그러나 같은 피붙이 집단이라도 ‘가족’ ‘친족’ ‘친지’ 등은 친근하거나, 적어도 가치중립적 의미로 쓰인다. 핏줄 공동체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는 현실이 반영된 게 아닐까.
 
- 70년대 女工들의 희생 -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10대 여성들이 일터로 나섰다. 자신은 초등학교만 마쳤는 데도 오빠나 남동생만은 고등학교에, 대학교에 보내겠다고. 식모로, 버스안내양으로, 여공으로 일하면서 얼마 안 되는 월급은 꼬박꼬박 집으로 부쳤다. 그 돈으로 가족이 먹고 살고, 형제들이 공부했다. 가족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희생이다. 그 희생이 가족을 살리고, 사회를 일으키고, 나라를 살찌게 했다.  
 
 요즘 가족의 끈끈한 핏줄 의식이 크게 옅어진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한신대가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사람 100명 중 36명은 ‘자녀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부모는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는 28%에 지나지 않았다. 갈수록 나이 든 부모를 버리고, 이혼율이 높아지고, 서로 자녀의 양육을 맡지 않으려는 풍토가 자리잡고 있다.  
 
가족은 해체됐는가. 그렇지 않다. 평소엔 ‘이웃사촌보다 못한 가족’처럼 보이지만 막상 일이 터지면 뭉친다. 여전히 가족보다 더 진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안식처는 없는 것이다. 가족 중 하나가 숨지면 나이와 지위를 가리지 않고 통곡하고, 오열하는 풍경 속에 가족의 의미는 남아 있다. TV에서는 끊임없이 옛날에 잃은 가족을 찾는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시청자들은 자신의 일인 양 눈시울을 적신다.  
 
금강산이 열리자 가장 먼저 줄을 선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고향 가까이 가서 부모님 제사를 지내려는 실향민들이었다. 온갖 위험 속에 중국을 거쳐 두만강까지 달려가 먼 발치에서라도 가족의 목소리나마 들으려는 이들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민족으로서 아직까지 가족을 대신할 만한 가치를 찾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1995년 여름 502명이 숨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도 피붙이들은 실종자 수색 등 인명구조에 큰 힘을 보탰다. 삼풍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이동수씨(41·회사원)는 “실종자의 가족 및 친지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사고대책반의 활동을 독려하고 무더위 속에 오랫동안 이어진 인명 구조 및 사고 수습에 큰 힘이 됐다”고 회고했다. 사고대책반으로 일한 전 서울시 공무원 김도형씨(63)도 “법이나 행정 절차를 따지면서 재빨리 대처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족·친지들이 메워줬다”고 말했다.   -
 
 치매노인 등 여전히 가족몫 -
 
 최근 노령 인구의 급증에도 길거리에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넘쳐나지 않는 것도 가족의 덕이다. 국가가 예산 부족을 탓하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이 그 부담을 가족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실업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사회에 떠돌지 않도록 부축하는 것은 그래도 동고동락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을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정부는 장기적 대책 운운하고 있지만 그 비용도 결국 세금에서 충당될 수밖에 없다. 현재 피붙이들이 국가와 사회의 기능을 떠맡은 채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현대사회·문화연구소 이성만 박사(49)는 “우리나라의 혈연 중시 전통이 이미 퇴색됐거나 사라졌다면 천문학적 예산을 추가로 들여야 돼 국가경제 전체에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가족의 힘’을 강조했다.  
 
- 배타성 걷어내면 순기능 -
 
  혈연을 중시하는 문화의 순기능은 얼마든지 더 있다. 설이나 한가위때면 핏줄을 찾아가는 마음의 여유는 바쁘고 복잡한 일상을 살아가는 동력의 원천이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이역만리에 버려진 러시아의 고려인이나 중국의 조선족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핏줄을 중시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관이 없었다면 같은 문화의 민족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 채 모래알로 흩어졌을 것이다.   배타성을 걷어낸다면 핏줄 문화야말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소중한 삶의 동력이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

메일문의하기

CS Center


010.7223.1691
월-금 : 9:30 ~ 17:30
토/일/공휴일 휴무
런치타임 : 12:30 ~ 13:30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