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역사문화 기본학습

북부여에서 대한민국

대한K화랑 0 208

1) 북부여의 출현과 열국 시대 개막


대단군의 통치권이 약화되고 부단군과 지방 군장들의 목소리가 커지던 고조선 말기에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하였다. 해모수는 서압록西鴨錄(지금의 요하 상류)에 위치한 고조선의 제후국인 고리국 출신으로 BCE 239년에 웅심산(지금의 길림성 서란)을 근거지로 북부여를 세웠다. 그 후 백악산 아사달을 점거하고 단군으로 추대됨으로써,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BCE 232).


이렇게 북부여가 고조선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을 때, 번조선과 막조선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서방 진출의 교두보이자 외적의 침략을 막는 방파제 구실을 하던 번조선은 당시 전국 시대의 혼란을 피해 넘어온 한족 난민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 난민 중에 연나라 사람 위만이 있었다. 위만은 한나라 조정으로부터 숙청당할 처지에 이르자 조선인으로 변장한 뒤 부하 1천 명과 함께 번조선 준왕에게 투항하였다(BCE 195). 준왕은 위만을 서쪽 변방인 상하운장(지금의 난하 서쪽 지역)을 지키는 장수로 임명하였다. 그런데 위만은 그곳에서 세력을 길러 이듬해에 왕검성을 쳐서 한순간에 준왕을 내쫓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BCE 194). ‘위만정권’이 탄생한 것이다.

한편 요서 지역 출신의 대부호 최숭은 바다를 건너 막조선의 왕검성(지금의 평양) 지역에 낙랑국을 세웠다(BCE 195). 강력한 한나라의 출현으로 요서 지역에 위기감이 팽배한 데다 위만을 비롯한 수많은 한족이 망명하여 오자, 최숭이 한반도로 이주하여 나라를 세운 것이다.

번조선 땅이 위만에게 강탈당할 때, 번조선의 상장군 탁卓이 조선의 백성을 이끌고 한강 이남으로 이주하여 새로이 ‘마한’을 세웠다(BCE 194). 이때 진조선과 막조선의 백성도 한강 아래로 남하하여 각기 ‘진한’과 ‘변한’을 세웠다. 마한은 전북 익산을, 진한은 경북 경주를, 변한은 경남 김해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만주의 진조선을 북부여가 대신할 때, 요서의 번조선은 망명객 위만이 차지하고 막조선의 강역인 한반도에는 낙랑국과 남삼한이 들어서면서 한국사는 서서히 열국列國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북부여의 계보와 고주몽 혈통의 비사秘史 | 고구려 900년 설과 광개토태왕릉비에 보이는 광개토태왕 17세손의 진실은 『환단고기』를 통해서 만 알 수 있다. 해모수는 고주몽의 고조할아버지이고 광개토태왕은 해모수로부터 17세손이 되어 고구려 900년 설(북부여 역년 181년 + 고구려 역년 726년)을 입증한다.

 

2) 북부여의 구국 영웅, 고두막한


북부여는 4세 단군에 이르러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한 무제武帝의 침공을 받은 것이다. BCE 109년, 한 무제는 우거왕이 다스리고 있던 고조선(위만정권) 땅을 침입하여 이듬해 우거의 왕검성을 함락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요동을 지나 북부여까지 침공하였다.

이때 분연히 의병을 일으켜 한나라 군대를 물리친 영웅이 바로 고두막한高豆莫汗이다. 고두막한은 졸본卒本에서 나라를 열어(BCE 108) 졸본부여라 하고 스스로 동명왕東明王이라 칭하였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나 고우루단군으로부터 양위 받아 북부여의 5세 고두막단군으로 즉위하였다(BCE 86). 고두막단군의 등장으로 전기 북부여 시대가 끝나고 새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북부여는 고두막단군의 아들 6세 고무서단군에 이르러 182년(BCE 239~BCE 58)의 짧은 역사를 끝내고 고구려로 계승된다.


‘북부여가 고조선을 계승하였다’는 사실은 한민족 고대사의 국통 맥을 바로잡는 핵심 요체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강단사학계는 일제 식민사학의 각본대로 위만정권을 고조선의 계승자로 앉혔을 뿐만 아니라, ‘위만정권이 망한 후에는 한사군이 설치되었다’고 가르친다. 북부여는 온데간데 없고, 중국의 식민지인 위만조선과 한사군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3) 일본에 진출한 부여족


고조선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부여인도 일본열도로 진출하였다. “부여는 한반도에서 고구려·백제·신라를 건국했을 뿐 아니라, 4세기에 일본열도로 건너가 나라를 세웠다. 유물·언어·신화·풍습 등 다방면에서 한반도와 일본의 문화가 매우 비슷하다”라고 말한 일본 학자 기다 사다기치喜田貞吉(1871~1939)의 주장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기다는 일본의 기마민족설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이고, 기마민족설을 최종적으로 완성한 사람은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1906~2002)이다. 일본의 고대 국가인 야마토大和 조정을 한반도에서 건너간 부여계 기마민족이 건설하였다는 설은 오늘날 일본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태백일사』에 따르면, 3세기 말에 서부여의 왕인 의려依慮가 선비 모용외에게 패하자 수천 명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가 왜를 평정하고 그곳의 왕이 되었다. 의려 또는 그의 아들 의라가 일본 역사서에서 말하는 15대 오진應神 왕이다. 오진 왕은 ‘삼신[神]의 부명符命에 응[應]한다’ 하여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한다.


부여인의 일본 진출은 고고학적으로도 입증된다. 오진應神 왕이 세운 나라가 있던 가와치河内 땅 오진 왕릉 터에서 금동으로 조각된 말안장 장식인 안교鞍橋가 나왔다. 이 유물은 기마민족이 대한해협을 건너서 일본에 진출하였음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한다.


4) 열국 시대 이후 대한민국 수립까지


북부여의 국통은 고구려로 계승되었다. 주몽은 북부여 시조 해모수의 고손高孫으로, 해모수의 둘째 아들 고진의 손자인 불리지의 아들이다. 원래 동부여 땅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제 고향인 북부여를 찾아가 고무서단군의 사위가 되었고 마침내 북부여의 7세 단군이 되었다. 그 후 나라 이름을 북부여에서 고구려로 바꾸었으니(BCE 37), 고구려는 북부여를 계승한 나라이다.


고구려는 북부여의 연장선상에 있는 나라이므로, 북부여를 ‘원고구려’라 할 수 있다. 고구려를 이은 대진大震(발해)은 대중상이 그리 불렀듯이, 곧 ‘후고구려’이다. 원고구려―고구려―후고구려로 이어지는 역사는 우리 국통 맥을 잇는 결정적 요소 중의 하나이다.


고구려가 망한 후 고구려의 유장遺將 대중상大仲象과 그의 아들 대조영大祚榮이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고 대진大震을 건국하였다. 흔히 쓰는 ‘발해’라는 이름은 당나라가 대진을 폄하하여 ‘발해渤海’라는 바다 이름에서 따 붙인 것이다.


대진은 동북아의 주인이었던 고구려의 계승자로서, 당시 국경을 맞대고 있던 신라와 달리 독자적인 연호를 쓰고 황제 칭호를 사용하였다. 대진은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릴 정도로 강성하였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926년경에 멸망하였다.


후신라(통일신라)와 대진이 공존한 남북국 시대가 끝난 후, 한민족의 국통은 고려, 조선, 대한민국으로 계승되었다. 고조선 시대 사관史官 발리가 지은 『신지비사神誌秘詞』에 따르면, 한민족 국통 맥은 아홉 번을 바뀌며 전개된다. 그 예언처럼 실제로 우리나라는 ①환국 → ②배달 → ③고조선 → ④북부여(열국 시대) → ⑤고구려·백제·신라·가야(사국 시대) → ⑥대진·신라(남북국 시대) → ⑦고려 → ⑧조선 → ⑨대한민국으로, 국통 맥이 아홉 번에 걸쳐 크게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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