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역사문화 기본학습

한민족 전성기, 고조선

대한K화랑 0 220

1) 나라를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림


초대 환웅이 배달을 개국한 지 1,500여 년에 이르러 단군왕검이 배달의 구환족 전체를 하나로 통일하여 ‘조선朝鮮’을 열었다(BCE 2333). 단군왕검은 조선의 개국시조로서 송화강 유역 ‘아침 태양이 빛을 비추는 땅’인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였다.

그 후 22세 색불루단군은 송화강 아사달에서 남서쪽의 백악산 아사달(지금의 길림성 장춘)로 천도하고, 44세 구물단군은 남쪽으로 더 내려와 장당경 아사달(지금의 요령성 개원시)로 천도하였다. 도읍지의 이동에 따라 왕조사가 크게 세 번 변한 고조선은 마흔 일곱 분 단군이 2,096년 동안 다스린, 고대 한민족의 전성기였다.


단군왕검은 삼신의 원리에 따라 나라를 삼한, 즉 진한·번한·마한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이것이 바로 고조선의 국가 경영 제도인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이다. 단군왕검은 대단군으로서 요동과 만주 지역에 걸쳐 있던 ‘진한’을 통치하고, 요서 지역에 있던 ‘번한’과 한반도에 있던 ‘마한’은 각각 부단군이 통치하였다. 마한은 하늘의 정신[天一]을, 번한은 땅의 정신[地一]을, 진한은 천지의 주인이요 중심인 인간[太一]을 상징하였다.


삼한三韓의 수도 위치 | 6세 단군 때 신지 발리는 자신이

 지은 서 사시 <서 효사>에서 삼한의 수도를 저울대(소밀랑, 송화 강아사달), 저울추(안덕향), 저울판(백아강\-) 에 비유하였다. 세 수도가 하나의 저울이 되어 균형을 계속 유지하는 한, 고조선의 태평시대는 보전될 것이라 하였다. 이 서 효사는 『고려사高麗史』 「김위제전金謂傳」과 이익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는 「신지비사神誌秘詞」로 나온다.

 

2) 제후국을 거느린 동북아의 대국


삼성조三聖祖의 마지막 시대인 고조선이 고대 한민족의 전성기였음은 고조선의 광활한 영토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고조선의 영토는 동쪽으로 한반도의 동해안, 북쪽으로 흑룡강을 지나 시베리아, 남쪽으로 일본 열도, 서쪽으로 몽골에 이르렀다. 고조선은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였다. 이러한 고조선을 고려, 조선의 중화 사대주의자들과 일제의 식민사학자들이 한반도 북부에 국한된 소국으로 줄여 놓았다. 그러나 고조선이 한반도에서 요서에 이르는 드넓은 땅을 차지한 동북아시아의 대국이었음은 고고학 발굴로도 입증된다. 20세기 후반에 발굴된 하가점夏家店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하가점은 내몽골 자치구 적봉시의 한 촌락으로 하가점 유적지의 상층에서 유목민 문화가 나타났고, 하층에서 BCE 2400~BCE 1500년에 걸친 농경 문화가 나타났다. 이 하층에서 동북아 청동기 문화의 대표적 유물인 비파형 청동검이 나왔는데, 만주와 한반도에서 발굴된 청동검과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하가점 하층문화는 고조선 문화이고, 하가점이 속한 몽골 지역은 고조선의 영역인 것이다.


고조선은 동북아의 대국으로서 70여 개의 크고 작은 제후국을 거느렸다. 『단군세기』에 의하면, 고조선의 단군은 제후국을 순회하였고 제후들은 단군에게 조공을 바쳐 고조선의 종주권을 인정하였다.


3) 고조선과 중국·일본의 관계


그렇다면 고조선과 당시 중국 왕조의 관계는 구체적으로 어떠하였을까? 초대 단군 시절, 중국의 순임금은 국가의 존망이 달린 대홍수를 당하였다. 고조선의 도움으로 보위에 오른 순은 9년 동안의 물난리 또한 고조선의 도움으로 무사히 해결하였다. 이때 순의 신하로서, 고조선의 부루 태자에게서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을 전수 받아 홍수를 해결한 실무자가 사공司空 우禹였다.

 

개국시조 때부터 고조선의 은덕을 입은 하나라는 마지막 군주 걸桀에 이르기까지 내내 고조선을 상국으로 모셨다. 하나라에서 상나라로 교체될 때에도 고조선의 힘이 작용하였다. 상나라는 시조 설의 탄생 설화에서 보여주듯 동이족이 세운 나라였다. 상나라 다음으로 550년 동안 중원을 지배한 주周나라도 그 창업 당시부터 고조선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많은 병력과 전차를 보유한 상나라 군대를 이기기 위해서 주 무왕은 동이족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무왕을 도운 동이족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강태공이다. 주나라도 이전의 왕조와 마찬가지로 고조선에 조공과 방물을 바쳐 예를 표하였다. 『환단고기』에는 주나라 왕 하瑕(4세 소왕昭王)가 고조선에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친 일, 32세 추밀단군 때 주나라가 번조선에 방물을 바친 일 등이 기록되어 있다. 하·상·주 중국 3왕조는 모두 고조선의 정치적 지배를 받았던 것이다.


일본의 역사 또한 중국 역사 못지않게 고조선과 밀착되어 있다. 고대 일본사는 동방 한민족의 이민 개척사요 일본 진출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일본의 정통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와 『고사기古事記』에 기록된 천손강림의 일본 건국사화가 환웅의 배달 건국사화와 그 틀이 너무나 유사하다.

그리고 『환단고기』에 따르면, 36세 매륵단군 때 협야후陜野侯 배반명裵幋命이 일본으로 건너가 삼도三島(일본을 구성하는 세 섬)를 평정하고 스스로 천왕이라 칭하였는데(BCE 667), 이 배반명이 곧 『일본서기』에 큐슈 인근의 섬 일향日向에서 출발하여 일본 열도를 평정하고 BCE 660년에 일본의 초대 천왕으로 등극하였다고 한 진무神武이다. 또한 『환단고기』는 서부여의 의려왕 또는 그 아들 의라가 선비족 모용괴에게 패하자 무리 수천 명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가 왜를 평정하고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한다(285년, 『태백일사』 「대진국본기」). 이때의 왕이 바로 일본 최초의 통일 왕조인 야마토 정권을 탄생시킨 15대 왕 오진應神이다.

4) 고조선과 북방 민족의 관계


『환단고기』에는 고조선과 북방 민족 간의 관계를 알려주는 귀중한 기록도 있다. 『단군세기』는 3세 가륵단군이 열양 욕살 삭정索靖을 약수 지방에 유배시켜 종신토록 감옥에 가둬 놓았다가 후에 용서하고 그 땅에 봉하여 흉노의 시조로 삼았다고 전한다. 흉노는 제국을 이룬(BCE 176) 후 나라를 신교神敎 삼신三神문화의 고향인 고조선과 같이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중앙은 흉노의 왕인 ‘선우單于’가 통치하고 동쪽은 좌현왕이, 서쪽은 우현왕이 통치하였다.

흉노는 자신들의 왕을 ‘탱리고도撑犂孤塗 선우’라고도 불렀는데, ‘탱리고도’는 ‘하늘의 아들’, 즉 ‘천자天子’를 의미한다. 흉노는 천지와 일월 그리고 조상을 숭배하였다. 흉노는 BCE 4세기 전국 시대부터 진·한 시대 내내 중국을 위협한 세력이었다. 진시황 때 완성된 만리장성도 흉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기 시작한 것이었다.


흉노 제국은 BCE 1세기 중반 이후 내분으로 분열되어 2세기 중반에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초원으로 들어간 이후 기록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4세기 중반에 ‘훈Hun’이라는 이름으로 서양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370년경 흑해 북부에 나타난 이후 알란족, 고트족 등 로마 제국의 변방 족속을 공격하였다. 이 공격으로 촉발된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서로마 제국을 무너뜨렸다. 훈족의 출현은 유럽의 고대사를 종식시키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1세기 말에 흉노가 떠난 북방 지역의 패권을 잡은 민족은 선비족이다. 『후한서』에서는 선비를 동호東胡(고조선의 별칭)의 후예라 했다. 즉 선비족도 흉노와 마찬가지로 고조선에 속한 족속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선비족은 2세기 중반에 단석괴檀石槐라는 영웅 밑에서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었지만 단석괴 사망 후 순식간에 여러 집단으로 나누어졌다. 이때 생긴 탁발拓跋, 모용慕容, 우문宇文, 단段, 걸복乞伏 등 여러 선비 부족은 당시 한나라가 망한 후 혼란에 빠져 있던 중국 땅으로 밀고 들어가 중국사에서 말하는 소위 5호16국 시대의 주역이 되었다. 그 가운데 북위(386~534)가 북중국을 통일하였고, 북위에서 나온 북주의 귀족인 양견이 패권을 잡고 수나라를 세웠다. 수를 뒤이어 당나라를 개국한 이연李淵도 선비족 출신이므로 당나라 역시 선비족이 세운 나라가 된다. 이렇듯 수와 당은 모두 고조선에 기원을 둔 북방 민족이 세운 나라인 것이다.

『단군세기』 4세 오사구단군 조에는 단군이 아우 오사달을 ‘몽고리한蒙古里汗’에 봉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선비족의 영웅 단석괴가 죽은 후 나누어진 여러 부족 중 하나인 실위족에서 칭기즈Ä(1162~1227)이 이끄는 몽골족이 출현하였다. 19세의 약관에 몽골족의 Ä으로 선출된 칭기즈Ä은 몽골 부족을 하나로 통합하고, 눈길을 초원 밖으로 돌려 중앙아시아 일대를 정복해 나갔다. 몽골은 칭기즈Ä 사후 유럽 원정에 나서 돌궐족이 세운 셀주크 투르크를 속국으로 삼았다(1243년). 그 후 몽골의 정복사업은 5대 Ä 쿠빌라이 때 절정에 달하여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 땅 전체를 다스리는 대통일 제국이 되었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넓은 강역을 차지한 시대인 원나라도 한족이 아니라 북방 민족이 일군 역사인 것이다.


몽골의 유럽 진출은 서양의 중세를 마감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 몽골군이 몰고 온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가 급감하여 경제적으로 중세를 지탱해 오던 농노제도가 무너졌다. 또한 흑사병 앞에서 무력한 신의 존재에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면서 중세의 정신적 지주였던 교회와 교황의 권위가 붕괴되었다. 흉노족이 유럽의 고대를 무너뜨렸다면, 몽골은 유럽의 중세를 마감하게 한 것이다.


흉노, 선비, 돌궐, 거란, 몽골 등 북방 민족은 오늘의 한민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 북방 민족과 한민족은 사상과 풍습 사이에 유사점이 많다. 북방 민족도 자신들을 ‘천손(하늘의 자손) 민족’이라 일컫고, 천신 즉 삼신상제님을 숭배하였다. 북방 시조들의 탄생에 얽힌 난생설화, 순장제와 형사취수제(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는 풍습) 등도 우리 문화와 유사하다. 북방 민족과 한민족은 ‘고조선’이라는 뿌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5) 고조선의 청동기와 고인돌


기존의 강단 사학계는 한국의 청동기 시대가 기껏해야 BCE 1300년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한국사의 청동기 시대는 그보다 천 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민족이 BCE 2500년경에 이미 청동을 사용하였음을 보여주는 요서 지역의 하가점 하층문화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하가점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 문화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비파형 동검이다. 악기 비파처럼 생긴 이 검은 요서, 요동, 만주와 중국의 하북성, 산동성, 그리고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중국 중원 지역과 시베리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고조선의 영역이 요서에서 한반도까지 걸쳐 있었음을 의미한다.

고조선의 뛰어난 청동기 제작술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가 바로 다뉴세문경多鈕細紋鏡(여러 꼭지 잔줄무늬 거울)이다. 이 청동 거울 뒷면에 새겨진 가느다란 선은 머리카락 굵기에 불과하다. 이런 정교한 선이 새겨진 청동 거울은 이제까지 다른 나라에서는 발굴된 적이 없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의 비율에 따라 그 성질이 달라지는데, 다뉴세문경은 주석의 비율이 27%에 달하여 매우 견고하다.


고조선은 높은 수준의 청동기 유물뿐 아니라 거석 유적에 속하는 고인돌도 많이 남겼다. 고인돌은 원래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에 나타난 돌무덤 형식의 하나로, 아시아에서는 만주와 한반도에 많이 남아 있다. 한반도의 경우 대략 4만 기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에 사용된 판석의 무게는 적게는 10톤 미만에서부터 300톤에 이른다. 이 거대한 판석을 떼어 옮기려면 수백 명의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인돌을 세우는 것은 부족장이나 왕이 다스리는 강력한 통치체제를 갖춘 사회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고인돌은 고조선 시대에 국가가 이미 출현해 있었음을 드러내주는 확고한 증거이다.

 

6) 삼한관경의 와해 속에 무너진 고조선


고조선은 44세 구물 단군 때 국호를 대부여大夫餘로 바꾸었다. 이 국호는 초대 단군의 4남 부여夫餘가 다스린 고조선의 제후국 ‘부여夫餘’에서 취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여는 예전의 진한 또는 진조선과 같은 막강한 통치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부단군이 다스리는 번조선·막조선도 똑같이 병권을 가지게 되어, 중앙의 진조선과 대등한 관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고조선은 급속하게 쇠락의 길을 걸었다. BCE 238년, 마침내 47세 고열가단군이 오가五加 귀족들에게 나라를 맡기고 산으로 들어가 버리니, 고조선은 2,096년으로 그 역사를 마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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